2024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한 해 접수되는 실종 아동 등 신고 건수는 총 49,624건이며, 이 중 아동이 25,692명이라고 합니다(경찰청,「2024년 실종아동등 연차보고서」). 이 숫자 뒤에는 단순 가출을 넘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범죄, 바로 ‘약취’와 ‘유인’의 그림자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온라인 그루밍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유인 범죄를 낳으며 법의 잣대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개인을 ‘물건’처럼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인신매매는 그 정점에 있는 범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신체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들에 대해 우리 형법은 어떻게 그 경계를 설정하고, 어떤 기준으로 처벌하며,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을까요? 형법 제31장 ‘약취, 유인 및 인신매매의 죄’는 바로 이 무거운 질문에 대한 법적 답변을 담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각 범죄의 개념적 차이부터 구체적인 성립 요건, 처벌 수위, 그리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까지 체계적으로 해설하고자 합니다.
1. 약취, 유인, 인신매매의 개념: 무엇이 다른가?
형법 제31장은 개인의 신체 활동의 자유, 특히 장소 이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 다루는 핵심 범죄인 약취, 유인, 인신매매는 모두 타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수단과 목적, 보호의 정도에서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차이를 보입니다. 정확한 법적 이해를 위해서는 이 세 가지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먼저 ‘약취(略取)’는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사람을 기존의 생활환경으로부터 분리시켜 자신의 사실상 지배하에 두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폭행·협박’이라는 강제력의 행사입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물리적인 힘이나 위협을 통해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길 가는 사람을 강제로 차에 태워 납치하는 행위가 전형적인 약취에 해당합니다. 반면 ‘유인(誘引)’은 기망(속임수) 또는 유혹을 수단으로 하여 사람을 꾀어내는 행위를 말합니다. 약취와 달리 물리적인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고, 피해자의 판단 착오나 왜곡된 의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연예인 시켜주겠다”고 속여 미성년자를 다른 장소로 데려가는 행위 등이 유인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따라나서는 외형을 띠지만, 그 의사결정 과정에 기망이나 유혹이 개입되었다는 점이 범죄 성립의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신매매(人身賣買)’는 이들 범죄 중 가장 중대한 법익 침해로 간주됩니다. 단순히 장소 이전의 자유를 넘어, 사람 그 자체를 ‘매매의 대상’으로 삼아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팔고 사는 행위는 물론, 성매매, 성적 착취, 장기 적출 등을 목적으로 사람을 모집, 운송, 전달, 은닉하는 등 일련의 모든 과정이 인신매매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구분 | 약취 (Kidnapping) | 유인 (Inducement) | 인신매매 (Human Traffic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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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 수단 | 폭행, 협박 등 강제력 사용 | 기망, 유혹 등 판단 착오 이용 | 모집, 운송, 전달 등 사람을 지배·관리하는 모든 행위 |
피해자 의사 | 명백히 의사에 반함 | 하자 있는 의사 (스스로 따라나서는 외형) | 의사 유무와 무관하게 성립 가능 (특히 취약상태 이용 시) |
핵심 특징 | 피해자의 항거를 억압 | 피해자의 판단력을 흐리게 함 | 사람을 수단이 아닌 객체로 취급 |
2. 주요 범죄 유형별 구성요건 심층 분석
형법 제31장은 보호 대상(미성년자 여부)과 범죄 목적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약취·유인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각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 즉 ‘구성요건’을 이해하는 것은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1) 미성년자 약취·유인죄 (형법 제287조)
이 죄는 ‘미성년자’를 보호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항입니다. 미성년자는 사리 분별력이나 판단 능력이 성인에 비해 부족하여 외부의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미성년자를 폭행·협박으로 약취하거나 기망·유혹으로 유인하면 본 죄가 성립합니다. 중요한 점은, 설령 부모 등 보호자의 동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미성년자 본인의 의사와 이익에 반한다면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판례의 태도: ‘보호·감독 관계’의 의미
법원은 미성년자 약취·유인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행위자가 미성년자를 기존의 ‘보호·감독 관계’로부터 이탈시켰는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즉,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 등 보호자의 실질적인 보호권이 미치지 못하는 상태로 두는 행위 자체를 범죄의 핵심으로 파악합니다.
2) 추행·간음·영리 등 목적 약취·유인죄 (형법 제288조)
이 조항은 ‘불법적인 목적’을 가진 경우 가중처벌하는 규정입니다. 사람을 약취 또는 유인하는 행위에 더하여, ▲추행 ▲간음 ▲결혼 ▲영리(금전적 이익) 등의 목적이 인정되면 형법 제288조가 적용되어 더 무겁게 처벌됩니다. 예를 들어, 취업을 미끼로 사람을 유인하여 성매매 업소에 넘기는 행위는 ‘영리 목적 유인’과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 등이 결합된 중범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3) 인신매매죄 (형법 제289조)
2013년 형법 개정으로 신설된 인신매매죄는 기존 약취·유인죄로 포섭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형태의 인신 착취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 죄의 핵심 구성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목적: 성매매와 성적 착취, 노동력 착취, 장기 적출 등을 목적으로 할 것
- ✔️ 행위: 사람을 모집, 운송, 전달, 은닉, 인계 또는 인수하는 행위
- ✔️ 수단: 폭행, 협박, 위계, 위력 또는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의 의사를 제압하는 경우. 특히 피해자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는 경우도 처벌 대상에 포함시켜 취약 계층 보호를 강화했습니다.
3. 처벌 규정과 가중처벌 사유
형법 제31장의 범죄들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라는 핵심적인 가치를 침해하므로 매우 엄중한 처벌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각 범죄의 법정형을 이해하고, 어떤 경우에 형이 가중되는지 아는 것은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기본적인 미성년자 약취·유인죄부터 목적범, 인신매매, 그리고 범죄 과정에서 다른 결과가 발생했을 때의 가중처벌까지 법은 촘촘한 처벌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범죄 유형 | 형법 조항 | 법정형 (처벌 수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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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약취·유인 | 제287조 | 10년 이하의 징역 |
추행 등 목적 약취·유인 | 제288조 제1항 |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
노동력착취 등 목적 약취·유인 | 제288조 제2항 |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
국외이송 목적 약취·유인·매매 | 제288조 제3항 |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
인신매매 | 제289조 제1항 | 7년 이하의 징역 |
추행 등 목적 인신매매 | 제289조 제2항 |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
노동력착취 등 목적 인신매매 | 제289조 제3항 |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
국외이송 목적 인신매매 | 제289조 제4항 |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
약취·유인 등 상해 | 제290조 제1항 | 3년 이상 25년 이하의 징역 |
약취·유인 등 치상 | 제290조 제2항 |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 |
약취·유인 등 살인 | 제291조 제1항 |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
약취·유인 등 치사 | 제291조 제2항 |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
⚠️ 예비·음모도 처벌 대상
형법 제296조는 이 장에서 규정한 대부분의 범죄에 대해 예비 또는 음모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범죄 실행에 착수하기 전,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함을 의미하며, 그만큼 우리 법이 약취·유인·인신매매 범죄를 얼마나 중대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4. 인신매매 방지법과 피해자 보호 제도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이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형법 외에 「인신매매등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약칭: 인신매매방지법)을 2023년부터 시행하여 피해자 보호를 위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이 법은 기존에 성매매, 성폭력 등 개별법에 흩어져 있던 피해자 보호 규정을 통합하고, 노동력 착취, 장기 적출 목적 등 다양한 유형의 인신매매 피해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인신매매방지법에 따른 주요 피해자 보호 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자 식별 및 보호: 수사기관이나 관련 기관은 인신매매 피해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강제적인 수사에 앞서 피해자를 식별하고 보호하는 절차를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피해자의 신원과 사생활은 철저히 비밀로 보장됩니다.
- 임시보호 및 쉼터 제공: 피해자는 최대 3개월까지 임시보호시설에서 머물며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장기적인 보호와 자립 지원을 위한 일반지원시설(쉼터) 또는 청소년지원시설 등으로 연계될 수 있습니다.
- 법률, 의료, 심리 지원: 국가는 피해자에게 무료 법률 구조, 의료비 지원, 심리 상담 및 치료 등 회복에 필요한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집니다. 이를 통해 피해자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법적 조력을 받고, 신체적·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 체류자격 및 생계 지원: 외국인 피해자의 경우, 인도적인 차원에서 국내에 체류하며 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회복에 전념할 수 있도록 G-1 비자 등 특별 체류자격이 부여될 수 있습니다. 또한, 긴급생계비, 직업훈련 등 자립을 위한 지원도 제공됩니다.
💡 피해자의 ‘비처벌 원칙’
인신매매방지법은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비처벌 원칙’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신매매 피해자가 범죄 과정에서 가해자의 강요나 위협에 의해 다른 불법적인 행위(예: 불법체류, 위조문서 사용 등)에 가담하게 되었더라도, 이를 이유로 피해자를 형사처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피해자를 처벌의 두려움 없이 보호하는 데 중점을 둔 조항입니다.
5. 실무적 쟁점과 최신 법률 동향 (2025년 기준)
법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약취, 유인, 인신매매 범죄 역시 그 양상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실무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1) 온라인 그루밍과 디지털 성범죄의 결합
최근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온라인 그루밍(Online Grooming)을 통한 미성년자 유인입니다. 가해자들은 SNS, 채팅 앱 등 온라인 공간에서 미성년자에게 접근하여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결국 성적 착취나 약취·유인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2025년 현재, 이러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서 온라인 그루밍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이를 형법상 유인죄와 어떻게 연계하여 처벌할 것인지가 중요한 실무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2) ‘궁박한 상태’ 이용의 입증 문제
인신매매죄에서 ‘피해자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것은 큰 진전이지만, 실무적으로 무엇이 ‘궁박한 상태’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가해자가 이를 ‘이용’했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경제적 어려움, 불안정한 신분, 심리적 취약성 등 피해자가 처한 복합적인 상황을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증명하고, 가해자의 악의적인 이용 의도를 밝혀내는 것이 수사와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3) 국제 공조의 중요성 증대
인신매매는 종종 국경을 넘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초국가적 범죄의 성격을 띱니다. 따라서 한 국가의 법 집행만으로는 근절이 어렵습니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인터폴(Interpol) 및 여러 국가와 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하고,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예: 팔레르모 의정서)을 이행하며 국제 공조 수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범죄인 인도, 증거 수집 등 국제적 협력은 인신매매 조직을 와해시키는 데 필수적입니다.⚠️ 법률 해석의 확장 가능성
향후 법원은 신종 범죄 유형에 대응하기 위해 ‘기망’, ‘유혹’, ‘위력’ 등 기존 법률 용어의 의미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 공간에서의 심리적 지배나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한 온라인상의 통제 행위가 ‘위력’이나 ‘유혹’에 해당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법의 해석과 적용은 사회 변화에 발맞춰 계속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형법 제31장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법적 방패입니다. 그러나 법 조항만으로는 모든 범죄를 예방할 수 없습니다. 변화하는 범죄 양상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관심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 시스템의 강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안전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출판될 예정인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의 저작물로서, 일체의 저작권 침해행위를 금지합니다. 인용시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 성범죄 법률/용어 해설집, url : https://성범죄로펌.com/~ , 날짜” 양식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 침해 사례를 copyright@lawlsh.com 으로 제보해 주시면, 소정의 사례금을 지급하오니, 많은 협조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