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조문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담아내는 정교한 그릇과 같습니다. 특히 개인의 가장 근원적인 권리인 신체의 자유와 인격권을 다루는 형법의 성범죄 관련 규정들은, 단순히 범죄 행위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시대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보호하려 노력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범죄를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만으로 한정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공연음란'(제22장), ‘추행 등 목적 약취, 유인'(제31장), ‘강도강간'(제38장) 등 다양한 장에 걸쳐 그 보호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짜여 있습니다. 이 글은 흩어져 있는 듯 보이는 이 조문들이 어떠한 논리적 체계 아래 연결되어 있으며, 각기 다른 보호법익을 통해 어떻게 개인의 존엄성을 다각적으로 수호하는지를 체계적으로 해설하고자 합니다.
1. 형법상 성범죄의 체계: 제22장, 제31장, 제32장, 제38장의 구조적 이해
우리 형법에서 성범죄 관련 규정은 단일 장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의 성격에 따라 여러 장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는 각 범죄가 침해하는 법익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범죄의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각 조문을 정확히 해석하고 적용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에 있지만, 사회의 성도덕, 개인의 사생활 비밀 등 다양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 장이 보호하려는 핵심 가치, 즉 ‘보호법익’을 중심으로 그 구조를 살펴보면 법의 입체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구분 (형법 장) | 주요 보호법익 | 대표적 범죄 유형 | 핵심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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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준강간·준강제추행 |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데 중점 |
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 | 사회의 건전한 성풍속·성도덕 | 음행매개, 음화반포등, 음화제조등, 공연음란 |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성풍속을 해하는 행위를 규제 |
제31장 (약취, 유인 및 인신매매의 죄) | 개인의 신체적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 | 미성년자약취·유인, 추행목적약취, 유인 | ‘추행, 간음, 영리’ 등의 특정한 목적이 행위자에게 있어야만 처벌 가능 |
제38장 (절도와 강도의 죄) | 개인의 재산권, 성적 자기결정권 | 강도강간, 해상강도강간 |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범죄가 결합하여 법률상 하나의 범죄로 규정된 결합범으로, 가중 처벌됨 |
2. 핵심 조항 분석: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형법 제32장은 성범죄 규정의 심장부라 할 수 있으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핵심 보호법익으로 삼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개인이 자신의 성적 행동을 누구와,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이 장의 범죄들은 이러한 권리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침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제32장의 주요 구성요건
제32장의 주요 범죄인 강간죄와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수단이 요구됩니다. 이는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수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으나, 최근 판례는 그 정도를 완화하여 해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 강간죄 (제297조):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간음하는 경우 성립합니다. 여기서 ‘간음’은 성기의 삽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2012년 형법 개정으로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되어 남성도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있습니다.
- 유사강간죄 (제297조의2):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구강, 항문 등 신체의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넣는 행위를 처벌합니다. 이는 강간죄가 포섭하지 못했던 다양한 형태의 성적 침해를 처벌하기 위해 신설된 조항입니다.
- 강제추행죄 (제298조):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하는 경우 성립합니다. ‘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그 범위가 매우 넓게 인정될 수 있습니다.
- 준강간·준강제추행죄 (제299조):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하는 경우를 처벌합니다. 약물, 술 등으로 인해 의식이 없거나 저항할 수 없는 상태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3. 주변 범죄 유형 탐구: 제22장, 31장, 38장의 연관성
성범죄는 제32장의 범죄로만 완결되지 않습니다. 성적 침해와 관련된 행위들은 다른 법익을 침해하며 다른 장의 범죄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변 범죄 유형을 이해하는 것은 성범죄의 다면적인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합니다.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 사회적 법익의 보호
형법 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에는 음행매개죄(제242조), 음화반포등죄(제243조), 음화제조등죄(제244조), 공연음란죄(제245조)가 포함됩니다. 이 중 가장 적용례가 많은 것은 공연음란죄로서,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공연성’과 ‘음란성’입니다. ‘공연성’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음란성’은 사회 일반의 건전한 성도덕을 해치는 것을 말합니다. 제32장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보호법익입니다. 제32장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반면, 공연음란죄는 사회의 성풍속이라는 사회적 법익을 보호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피해자가 없더라도 성립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제31장 약취, 유인 및 인신매매의 죄: 개인의 신체적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
추행목적약취, 유인(제288조)는 ① 추행, 간음, 영리 또는 결혼 목적, ②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 목적, ③ 국외로 이송할 목적 등 특정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약취 또는 유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입니다. 이 조항의 핵심은 ‘약취, 유인’이라는 행위와 ‘특정한 목적’의 결합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범죄는 ‘목적범(目的犯)’으로서, 단순히 사람을 약취·유인하는 행위만으로는 성립하지 않으며, 법 조문에 명시된 ‘추행, 간음, 영리’ 등의 특정한 목적이 행위자에게 있어야만 합니다제38장 절도와 강도의 죄: 개인의 재산권,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
강도강간죄(제339조)는 강도가 사람을 강간한 때에 성립합니다. 강도강간죄는 개인의 재산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두 가지 중대한 법익을 침해하는 만큼, 그 처벌 역시 매우 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이는 유기징역의 하한선이 10년이라는 의미입니다. 살인죄의 법정형이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유기징역의 하한선이 5년인 것과 비교하면, 법이 강도강간죄를 얼마나 중하게 처벌하고자 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4. 성범죄 특별법과 피해자 보호 제도의 현황
사회의 변화와 함께 성범죄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교묘해짐에 따라, 기존 형법만으로는 모든 범죄를 규율하고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형법을 보완하고 처벌을 강화하며 피해자 보호를 구체화하기 위한 여러 특별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특별법으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이 있습니다.법률명 | 주요 내용 |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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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처벌법 |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통신매체이용음란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처벌 규정 | 형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신종 디지털 성범죄 등에 대한 처벌 근거 마련 |
아청법 |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가중처벌,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배포·소지 등 엄벌 | 성인보다 더 두터운 보호가 필요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한 특별 규정 |
- 신뢰관계인 동석: 피해자가 미성년자이거나 심리적 불안정 상태에 있을 때, 수사나 재판 과정에 부모, 배우자, 상담사 등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 가명 조서: 피해자의 신상 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 조서 등 서류에 실명 대신 가명을 사용하여 작성할 수 있습니다.
- 영상녹화 진술: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한 영상녹화 진술을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법정에서의 반복적인 증언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줄여줍니다.
- 피해자 국선변호사: 경제적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성폭력 피해자가 법률적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변호사를 지원합니다.
- 해바라기센터: 성폭력 피해자에게 365일 24시간 상담, 의료, 법률, 수사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기관입니다.
5. 최신 법 개정 동향과 사회적 변화의 반영
성범죄 관련 법률은 사회적 인식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는 ‘정조’의 개념으로 접근했던 것이 이제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인의 기본권 보호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주요 개정 동향과 논의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1) ‘비동의 간음죄’ 도입 논의
현행 강간죄는 ‘폭행·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어, 폭행이나 협박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의 성적 침해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에 따라, 강간죄의 성립 요건을 ‘폭행·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전환하자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핵심이 ‘동의’에 있다는 인식을 법에 명확히 반영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2025년 10월 현재 이는 논의 및 법안 발의 단계에 있으며, 아직 입법화되지는 않았습니다.💡 법률 패러다임의 전환
‘비동의 간음죄’ 논의는 단순히 조문 하나를 바꾸는 것을 넘어, 성관계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해자의 폭력 행사 유무에서 피해자의 동의 유무로 옮기는 중요한 법철학적 전환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는 ‘No Means No’를 넘어 ‘Only Yes Means Yes’로 나아가는 세계적인 입법 추세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2) 디지털 성범죄 및 스토킹 범죄 처벌 강화
N번방 사건 등을 계기로 불법 촬영, 성착취물 제작·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2020년 이후 관련 법률이 대폭 개정되어, 불법 성적 촬영물 소지·시청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신설되고, 전반적인 법정형이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또한, 성범죄의 전조 단계가 될 수 있는 스토킹범죄에 대한 처벌법이 제정(2021년)되어, 피해자를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 강화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형법상 성범죄 관련 규정들은 고정불변의 텍스트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 감수성 향상과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앞으로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더욱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피해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법체계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됩니다.곧 출판될 예정인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의 저작물로서, 일체의 저작권 침해행위를 금지합니다. 인용시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 성범죄 법률/용어 해설집, url : https://성범죄로펌.com/~ , 날짜” 양식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 침해 사례를 copyright@lawlsh.com 으로 제보해 주시면, 소정의 사례금을 지급하오니, 많은 협조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