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서 증거는 사실 인정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결정적인 증거라 하더라도, 그 증거가 수집된 순간부터 법정에 제출되기까지 적절하게 관리되지 않았다면 증거로서의 가치를 잃을 수 있습니다. 증거의 수집, 보관, 이전 과정을 빈틈없이 기록하고 관리하는 원칙, 그것이 바로 체인오브커스터디(Chain of Custody)입니다. 본 글에서는 체인오브커스터디의 개념과 성범죄 사건에서의 의의, 그리고 관련 법률에 대해 살펴봅니다.
1. 체인오브커스터디
가. 개념 정의
체인오브커스터디(Chain of Custody)는 우리말로 ‘증거물 관리의 연속성’ 또는 ‘관리 연속성’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이는 범죄 현장에서 증거가 수집된 순간부터 법정에 제출되기까지, 해당 증거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취급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연속적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모든 절차를 의미합니다. 이 원칙의 궁극적인 목표는 증거의 무결성(Integrity)과 진정성(Authenticity)을 입증하는 데 있습니다. 즉, 법정에 제출된 증거가 사건 현장에서 수집된 바로 그 증거이며, 수집 이후 어떠한 위변조나 훼손, 오염 없이 원래의 상태 그대로 보존되었음을 증명하는 과정입니다.나. 기록의 범위
체인오브커스터디에 포함되는 기록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증거 수집자의 신원 및 소속
- 수집 일시 및 장소
- 증거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
- 봉인 과정 및 보관 장소
- 분석을 위해 증거에 접근한 모든 사람의 신원, 접근 목적 및 일시
체인오브커스터디의 3대 목표
체인오브커스터디는 증거의 법적 효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보장합니다.
1. 진정성(Authenticity): 법정에 제출된 증거가 실제 사건과 관련된 바로 그 증거임을 보증합니다. 2. 무결성(Integrity): 증거가 수집된 이후 어떠한 형태로도 변경, 오염, 또는 훼손되지 않았음을 보증합니다. 3. 증거능력(Admissibility): 위 두 가지가 입증되어, 해당 증거가 법정에서 증거로서 채택될 자격을 갖추게 합니다.
2. 성범죄 사건에서의 중요성
가. 증거의 특수성
모든 형사사건에서 증거 관리는 중요하지만, 성범죄 사건에서는 다루어지는 증거의 특수성으로 인해 체인오브커스터디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됩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증거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생물학적 증거: DNA, 체액, 모발 등은 매우 미량이며 쉽게 오염되거나 훼손될 수 있습니다. 부적절한 수집이나 보관은 증거의 가치를 상실시킬 수 있습니다.
- 디지털 증거: 통신 기록, SNS 대화 내용 등 디지털 증거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쉽게 삭제되거나 수정될 수 있습니다. 원본 파일과 사본의 동일성을 입증하고, 데이터 추출 및 분석 과정에서 위변조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유형별 증거 쟁점에 대해서는 카메라등이용촬영죄 유형별 방어 전략 글도 함께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나. 공정한 재판을 위한 기초
이처럼 민감하고 훼손되기 쉬운 증거들이 다뤄지는 성범죄 사건에서, 체인오브커스터디는 증거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기본 원칙입니다. 만약 증거 관리의 연속성이 깨진다면, 변호인 측에서는 증거가 오염되었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증거의 신빙성을 다툴 수 있습니다. 이는 재판의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체인오브커스터디의 철저한 준수는 진실 발견과 공정한 재판이라는 형사사법의 이념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디지털 증거와 해시값
디지털 증거의 경우, 체인오브커스터디는 ‘해시값(Hash Value)’ 기록을 통해 무결성을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해시값은 파일의 고유한 디지털 지문과 같아서, 파일 내용이 단 1비트라도 변경되면 전혀 다른 해시값이 생성됩니다. 수사기관은 증거 수집 시점의 원본 해시값을 기록해두고, 이후 모든 분석 및 제출 과정에서 해시값을 비교하여 데이터가 변경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3. 체인오브커스터디 요건
견고한 체인오브커스터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증거의 수명 주기 전반에 걸쳐 핵심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서류 작업을 넘어, 증거를 다루는 모든 과정에서의 철저한 원칙 준수를 요구합니다.| 단계 | 주요 요건 및 활동 | 기록 사항 예시 |
|---|---|---|
| 1. 수집 | 증거를 최초로 발견하고 확보하는 단계. 권한 있는 자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집해야 합니다. | 수집자 성명, 소속, 수집 일시/장소, 증거물 사진 |
| 2. 포장 및 봉인 | 각 증거물은 개별적으로 적절한 용기에 포장하고, 증거 봉투나 봉인 스티커를 사용하여 봉인합니다. | 포장 방법, 사용된 봉인 도구, 봉인자 서명 및 일시 |
| 3. 라벨링 | 포장된 증거물에 고유 식별 번호, 사건 번호, 내용물 설명 등을 명확하게 기재한 라벨을 부착합니다. | 사건 번호, 증거 번호, 내용물, 수집 위치 |
| 4. 이전 | 증거물을 현장에서 보관소나 분석실로 옮기는 과정입니다. 모든 인수인계 과정은 문서로 기록됩니다. | 인계자/인수자 성명 및 서명, 인계/인수 일시 |
| 5. 보관 | 증거는 외부인의 접근이 통제되고, 증거의 특성에 맞는 환경이 유지되는 안전한 장소에 보관되어야 합니다. | 보관 장소, 보관 시작/종료 일시, 보관 책임자 |
| 6. 분석 | 증거 분석을 위해 봉인을 해제하고 다시 봉인하는 모든 과정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 분석가 성명, 분석 목적, 분석 일시, 분석 후 증거 상태 |
| 7. 처분 | 사건 종결 후 증거물을 폐기하거나 반환하는 최종 단계입니다. | 처분 방법, 처분 일시, 최종 책임자 서명 |
4. 법적 효과와 위반 시 문제점
가. 증거능력과의 관계
체인오브커스터디 원칙의 준수 여부는 법정에서 해당 증거의 증거능력과 증명력을 평가할 때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됩니다. 이 원칙이 충실히 지켜진 증거는 그 신뢰성이 높게 평가되어 증거능력이 인정되고, 재판부가 사실을 판단하는 데 보다 중대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나. 위반 시 발생하는 문제점
반면, 체인오브커스터디가 훼손되거나 그 기록이 불분명할 경우 심각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은 바로 증거능력의 부정입니다. 변호인은 증거 관리 과정의 허점을 지적하며 “해당 증거가 위조, 변조, 또는 오염되었을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만약 법원이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해당 증거는 재판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범죄 현장에서 수거된 DNA 증거의 인계인수 기록이 누락되었다면, 기록이 없는 시간 동안 증거가 바뀌었거나 다른 증거와 섞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슬의 끊어진 고리’는 증거 전체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해당 증거는 법정에서 효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과의 관계
체인오브커스터디의 중대한 훼손은 경우에 따라 ‘위법수집증거배제 원칙’이 문제되는 상황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증거의 수집·보관·이전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나 영장주의 등 적법절차가 명백히 위반된 경우, 그러한 증거는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가 정하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여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증거배제 여부는 위법의 내용과 정도, 피고인에게 미친 불이익 등을 종합해 재판부가 판단하며, 그 판단에 따라 수사 전체의 적법성에 관한 문제로까지 확장될 수도 있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 성범죄 사건 증거 확보 방법 글을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5. 관련 법률 및 제도
우리나라 법률에서 ‘체인오브커스터디’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정신과 원칙은 형사소송법을 비롯한 여러 법률과 규칙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주요 관련 법규는 다음과 같습니다.- 형사소송법 압수·수색 규정: 압수·수색·검증 절차에 관한 규정(제106조 이하)은 증거 수집의 적법성을 담보하는 기초가 됩니다. 특히 압수물 목록 작성 및 교부(제129조), 압수물의 보관과 폐기(제130조), 압수물의 대가보관(제132조) 등은 증거물의 보관 연속성과 관리 체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규정으로, 체인오브커스터디를 법적으로 지원하는 중요한 근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디지털 증거 관련 규정: 형사소송법 제106조 제3항은 정보저장매체 등에 대한 압수 시, 원칙적으로 저장매체에 기억된 전자정보의 범위를 정하여 출력하거나 복제하여 제출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과 관련 판례·실무는 디지털 증거가 수집·복제되는 전 과정에서 전자정보의 무결성과 동일성이 유지·입증되도록 할 것을 요구하는 취지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 수사기관의 내부 규칙: 검찰의 ‘압수물 사무규칙’, ‘디지털 증거의 수집·분석 및 관리 규정’, 경찰의 ‘범죄수사규칙’ 및 ‘디지털 증거 처리 규칙’ 등에는 증거물의 취급, 보관, 인계인수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가 상세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원(NFS) 및 감정기관 규정: 국과수와 같은 감정기관 역시 감정 의뢰된 증거물의 접수, 분석, 보관, 반환에 관한 엄격한 내부 규정을 통해 체인오브커스터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