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 공간은 의사와 환자 단둘만의 신뢰로 채워집니다. 수많은 진료 행위가 이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그 신뢰의 경계에서 예기치 못한 오해와 갈등이 싹트기도 합니다. 특히 신체 접촉이 불가피한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성범죄 고소는 한순간에 의사의 명예와 경력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매우 중대한 사안입니다. 이는 단순히 법적 다툼을 넘어, 평생 쌓아온 전문성과 사회적 신뢰를 위협하는 실존적 위기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감정적 대응을 최소화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법률 대응 전략을 단계별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의사 성범죄 사건 발생 시 즉각 해야 할 첫 조치
진료 중 성범죄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대부분의 의사는 극심한 당혹감과 억울함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순간의 초기 대응이 사건 전체의 향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골든타임’일 수 있습니다. 섣부른 감정적 대응이나 안일한 판단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침착하고 전략적인 첫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건에 대해 섣불리 언급하거나 대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고소인(환자)에게 직접 연락하여 회유나 합의를 시도하거나, 감정적으로 따지는 행위는 절대 금물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칫 혐의를 인정하는 것으로 비치거나, 2차 가해로 해석되어 수사 과정에서 매우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병원 내부 직원이나 동료에게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이야기하는 것 또한 신중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소문이 퍼지거나, 왜곡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시급한 조치는 의료분쟁 및 성범죄 사건에 특화된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입니다. 일반 형사 사건과 달리, 진료 중 발생한 성범죄 혐의는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관련 법리와 판례에 정통한 전문가의 조력이 필수적입니다. 변호사 선임은 단순히 법률 자문을 구하는 것을 넘어, 수사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는 모든 과정의 시작점입니다.💡 초기 대응 핵심 체크리스트
- 침묵 유지: 고소인, 주변인에게 사건 관련 언급을 자제합니다.
- 전문 변호사 선임: 의료 관련 성범죄 사건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와 즉시 상담하고 선임 절차를 밟습니다.
- 사실관계 정리: 변호사 조력 하에 고소 당일의 진료 상황, 대화 내용, 목격자 등을 시간 순서대로 최대한 상세히 기록합니다.
- 증거 보존: 진료기록, CCTV 등 관련 자료가 훼손되거나 삭제되지 않도록 즉시 보존 조치를 취합니다.
2. 진료기록·CCTV 등 증거 확보 요령
의사 성범죄 사건, 특히 진료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발생한 혐의는 고소인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따라서 억울한 혐의를 벗기 위해서는 고소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를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감정적인 호소만으로는 수사기관이나 사법부를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증거는 바로 진료기록부입니다. 진료기록부에는 환자의 주된 증상(Chief Complaint), 진찰 내용, 시행한 검사나 처치, 처방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소인이 주장하는 성추행 행위가 당시 환자의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한 필수적인 의료 행위였음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진을 위해 상의를 올리거나, 특정 부위를 촉진하는 행위가 왜 필요했는지 진료기록을 통해 의학적 정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CCTV 영상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할 가장 강력한 물적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진료실 내부, 대기실, 복도 등에 설치된 CCTV 영상을 즉시 확보하여 보존해야 합니다. CCTV 저장 기간은 보통 1~2개월로 길지 않으므로, 고소 사실을 인지한 즉시 영상 확보에 나서야 합니다. 만약 진료실 내부에 CCTV가 없다면, 환자의 입·퇴실 시간, 당시 표정이나 행동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외부 CCTV 영상이라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거 확보 시 주의사항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절대로 원본을 수정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진료기록을 뒤늦게 추가 기재하거나 수정하는 행위, CCTV 영상의 특정 부분을 삭제하는 행위는 증거 인멸 시도로 간주되어 오히려 매우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증거는 원본 그대로, 법적 절차에 따라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제출해야 합니다.
증거 종류 | 확보 요령 | 활용 방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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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기록부 (EMR/종이) | 사건 당일 및 이전 진료기록 전체 사본 확보. 수정·삭제 절대 금지. | 진료 행위의 의학적 필요성 및 정당성 입증. 고소 내용과 진료 내용의 일치 여부 확인. |
CCTV 영상 | 저장 기간 만료 전 즉시 확보. 원본 파일과 사본 모두 보관. | 진료실 내외부 상황, 환자의 행동, 동석자 유무 등 객관적 사실관계 확인. |
각종 동의서 | 시술, 검사 등 신체 접촉이 있었던 행위에 대한 사전 동의서. | 환자가 진료 행위의 내용과 필요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동의했음을 증명. |
목격자 진술 | 당시 진료에 동석했던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직원의 사실확인서. | 제3자의 시각에서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술하여 고소인의 주장을 반박. |
문자/메신저 기록 | 진료 예약, 진료 후 문의 등 환자와 주고받은 모든 커뮤니케이션 기록. | 고소 이전 환자의 태도나 분위기를 파악하여 고소의 동기나 신빙성 판단. |

3. 경찰·검찰 조사 대응법
변호사 선임과 증거 확보가 완료되었다면, 다음 단계는 수사기관의 조사에 임하는 것입니다. 경찰 및 검찰 조사는 형사 절차에서 피의자의 진술이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첫 단계이므로, 어떻게 진술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변호사와 동석하여 조사에 임해야 하며, 사전에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해야 합니다.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은 고소인의 진술을 토대로 매우 구체적이고 집요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감정적으로 격앙되거나 억울함만을 호소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일관되고 논리적인 태도로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침착하게 진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답변해야 하며, 추측에 기반한 불확실한 진술은 피해야 합니다. 잘못된 진술 하나가 전체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수사관의 유도 신문이나 압박 질문에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은 없나요?”, “환자가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한 것은 맞지 않나요?” 와 같은 질문에 섣불리 긍정하거나 사과하는 뉘앙스의 답변을 할 경우, 혐의를 일부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모든 답변은 변호사와 사전에 논의한 방어 전략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사 시 진술 원칙
- 변호사 동석: 어떠한 경우에도 변호사 없이 단독으로 조사에 임하지 않습니다.
- 진술 거부권 활용: 불리한 질문에 대해서는 헌법상 보장된 진술 거부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습니다.
- 객관적 진술: 감정적 호소 대신, 확보된 증거(진료기록 등)를 바탕으로 사실관계 중심으로 진술합니다.
- 피의자 신문 조서 확인: 조사가 끝난 후에는 조서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자신의 진술과 다르게 기재된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정정을 요청해야 합니다.
4. 의사면허 및 행정처분 리스크 관리
의사 성범죄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될 경우, 이는 단순히 벌금이나 징역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의사 면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행정처분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특히 2023년 5월 개정되어 2023년 11월 20일부터 시행된 의료법에 따르면, 모든 범죄(업무상과실치사상 제외)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집행유예 포함)을 선고받은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그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성범죄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중대 범죄로 분류되므로, 유죄 판결 시 면허 취소 처분을 피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형사 절차 초기 단계부터 면허 취소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설령 형사 재판에서 벌금형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더라도, 보건복지부는 별도의 행정처분으로 자격정지를 내릴 수 있습니다.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최대 1년까지 의사 면허 자격이 정지될 수 있으며, 이는 병원 운영과 경제 활동에 막대한 타격을 주게 됩니다. 또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대한 취업제한 명령이 부과될 수도 있어 사실상 의료 활동이 불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은 별개!
형사 재판에서 무죄나 불기소 처분을 받는 것이 최선이지만, 만약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형량을 최소화하여 금고형 이상을 피하는 것이 면허 유지를 위한 차선책이 될 수 있습니다. 형사 대응과 행정처분 대응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변호사와 상담 시 이러한 행정적 리스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5. 억울한 고소에 대비하는 평소 예방수칙
최선의 대응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입니다. 진료 환경의 특수성으로 인해 언제든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평소 억울한 성범죄 고소에 휘말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현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예방 수칙은 환자와의 충분한 소통과 설명입니다. 신체 접촉이 필요한 진찰이나 처치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그 이유와 과정을 환자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가슴 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배를 좀 눌러서 진찰하겠습니다” 와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오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민감한 부위를 진찰할 때는 더욱 상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제3자 입회 하에 진료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효과적인 예방법입니다. 특히 이성 환자를 진료하거나, 민감한 부위를 진찰해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간호사나 다른 의료진을 동석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의사를 보호하는 장치이자,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 불필요한 오해를 막는 역할을 합니다. 동석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커튼이나 스크린을 일부 개방하여 진료 과정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료 환경을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료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환자에게 사전 고지하고 동의를 얻는다면 억울한 분쟁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CCTV 설치가 부담스럽다면, 진료 내용을 녹음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사전에 환자에게 고지하고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요합니다.예방 수칙 | 구체적인 실행 방안 | 기대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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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설명 및 동의 | 신체 접촉 전 진료 행위의 목적과 방법을 명확히 설명하고 동의 구하기 | 환자의 이해도 증진, 오해 소지 감소, 신뢰 관계 형성. |
제3자 입회 (Chaperone) | 이성 환자 또는 민감 부위 진료 시 간호사 등 동성 의료진 배석. | 객관적 상황 증명, 의사 보호, 환자 심리적 안정. |
환경적 안전장치 | 진료실 CCTV 설치(사전 고지 필수), 진료 내용 녹음(사전 동의 필수), 진료실 문 일부 개방. | 물적 증거 확보, 분쟁 발생 시 객관적 판단 근거 마련. |
상세한 기록 | 진료기록부에 시행한 진찰 내용과 환자의 반응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 | 진료 행위의 정당성 및 필요성에 대한 사후 입증 자료로 활용.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