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영역에서 용어의 정의는 사건의 본질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성범죄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행위의 유형과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법리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법적 평가가 내려질 수 있습니다. ‘강제추행’과 ‘준강제추행’은 그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두 용어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그 성립을 위한 핵심 요건인 ‘구성요건’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학술적인 구분에 그치지 않고, 수사 방향, 증거 수집, 그리고 최종적인 법적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의 구성요건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관련 사안에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 가늠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보다 기초적인 강제추행 개념과 실무 쟁점은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 해설: 구성요건, 판례, 실무 쟁점 정리」도 함께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1. 강제추행의 핵심 구성요건: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
강제추행은 형법 제298조에 규정된 범죄로, 그 핵심은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사람에 대하여 추행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추행 행위가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강제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법률적으로 ‘폭행’은 비교적 넓은 개념으로 해석됩니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라면 그 힘의 강약은 반드시 문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저항을 완전히 억압할 정도의 강력한 물리력뿐만 아니라, 기습적으로 특정 신체 부위를 잡거나 만지는 행위도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하는 유형력의 행사로 보아 폭행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유형력의 행사라면 그 자체로 폭행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대법원 전원합의체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판결 등 참조). ‘협박’은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해악을 고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내용과 방식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다만 실제 사건에서는 폭행과 협박이 함께 문제되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의 연령·관계·상황에 따라 동일한 언행이라도 협박성의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강제추행과 다른 범죄(예: 강간미수) 사이의 경계와 실무 대응은 「강간미수 vs 강제추행, 처벌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와 대응 전략」에서 심화해서 다루고 있습니다.강제추행의 성립 요건 정리
강제추행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통상 다음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① 추행의 고의: 단순한 우연한 접촉이 아니라, 성적 목적 또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에 대한 인식과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② 객관적으로 추행에 해당하는 행위: 일반인의 관점에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유발하고,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수준의 성적 행위여야 합니다. ③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수단: 이러한 추행 행위가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강제 수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판례는 폭행 행위 자체가 곧 추행 행위로 평가되는 경우(이른바 ‘기습추행’)에도 강제추행을 인정하는 등, ‘폭행’의 개념을 상당히 넓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준강제추행의 판단 기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의 이해
준강제추행은 형법 제299조에서 규정하며, 강제추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을 다룹니다. 이 조항의 핵심은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추행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즉, 강제추행처럼 행위자가 폭행이나 협박과 같은 적극적인 유형력을 행사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피해자의 취약한 상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준강제추행죄 및 준강간죄의 보다 심화된 개념·판례는 「형법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 해설: 개념부터 실무까지」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가. ‘심신상실’의 의미
‘심신상실’이란 정신 기능의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약물이나 술에 의해 만취하여 의식을 거의 잃은 상태
- 깊은 잠에 빠져 외부 자극에 사실상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
- 특정 정신 질환 또는 장애로 인해 당시 상황에서 정상적인 판단이 현저히 불가능한 상태
나. ‘항거불능’의 의미
‘항거불능’은 심신상실 이외의 사유로 인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행위자와 피해자 사이의 지위·권력 관계(위계·위력)
- 폐쇄된 공간, 야간, 타인 부재 등 환경적 요인
- 신체적 힘의 차이, 질병·장애 등 신체적 취약성
- 극심한 공포·충격으로 인해 사실상 움직이거나 거절 의사를 밝히기 어려운 상태
3. 강제추행 vs 준강제추행: 결정적 차이점 비교 분석
강제추행과 준강제추행은 모두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법정형 역시 동일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립 요건과 입증의 초점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이며, 이 차이가 바로 사건 대응 전략의 핵심이 됩니다. 가장 큰 차이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범행 수단
- 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적극적인 강제력 행사
- 준강제추행: 이미 존재하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
- 피해자의 상태
- 강제추행: 기본적으로 의식은 있으나 폭행·협박으로 인해 저항이 억압·곤란해진 상태
- 준강제추행: 애초에 의식 또는 저항능력이 없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
| 구분 | 강제추행 (형법 제298조) | 준강제추행 (형법 제299조) |
|---|---|---|
| 범행 수단 | 폭행 또는 협박 (적극적 유형력 행사) |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 이용 |
| 피해자 상태 | 의식이 있고 저항이 가능한 상태에서 강제력에 의해 제압됨 | 의식이 없거나 저항이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한 상태 |
| 행위의 핵심 | 상대방의 저항을 억압하거나 곤란하게 함 | 상대방의 무저항·취약 상태를 기회로 삼아 이용함 |
| 입증의 초점 | 폭행 또는 협박 행위의 존재와 정도, 추행의 고의 | 추행 당시 피해자의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 이를 인식·이용한 행위자의 고의 |
| 법정형 |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 | 강제추행의 예에 의함 (동일) |
4. 법적 해석의 쟁점: 행위자의 인식과 피해자 상태의 입증 문제
특히 준강제추행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는 핵심 쟁점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가. 행위자의 ‘이용’ 의사(고의)
준강제추행이 성립하려면 단순히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셨다거나 피곤해 보였다는 정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행위자에게 “상대방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고, 그 상태를 이용하여 추행을 한다”는 고의가 인정될 정도의 정황이 필요합니다.- 피해자가 사실상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지
- 피해자가 반복적으로 거절 의사나 불편함을 표시했는지
- 사건 전후 대화 내용, 메시지, 통화내역 등에서 이를 추단할 수 있는지
나. 피해자의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의 입증
다음으로 중요한 쟁점은 “피해자가 실제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심신상실’과 달리 ‘항거불능’은 심리적·상황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여 정도 차이와 해석의 여지가 넓기 때문에, 입증이 특히 까다롭습니다. 법원은 보통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피해자의 연령, 성별, 신체적·정신적 상태
-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상사–부하, 교사–학생, 군 간부–병사 등)
- 사건이 발생한 장소·시간, 주변에 제3자가 있었는지 여부
- 피해자가 당시 보인 반응, 이후 주변인에게 털어놓은 내용·시점
입증과 관련한 실무적 고려사항
성범죄 사건은 당사자들의 기억과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건 발생 후 시간이 경과할수록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어려워지는 구조를 가집니다. 따라서 사건 직후부터 일지를 작성하듯 사실관계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가능하다면 CCTV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보존·제출을 요청하며, 통화·문자·메신저 기록 등 관련 자료를 삭제하지 않고 보관하는 것이 초기 대응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5. 동일한 법정형, 그러나 다른 법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
형법은 준강제추행을 “강제추행의 예에 의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준강제추행의 법정형이 강제추행과 동일하게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법이 두 행위를 동일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범행의 수단은 다르더라도 결국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점이 같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법정형이 같다고 해서 두 범죄에 대한 접근 방식까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강제추행 혐의의 경우: 폭행 또는 협박의 존재 여부, 그 정도, 추행의 고의 등을 중심으로 쟁점이 정리됩니다.
- 준강제추행 혐의의 경우: 당시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의 존재 여부, 그리고 행위자가 이를 인식하고 이용했다는 고의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