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낳을 때, 법은 그 무게를 어떻게 측정할까요? 특히 국가를 수호하는 군 조직 내에서 성범죄가 피해자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와 법체계는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이는 단순한 범죄의 결합이 아닌, 군이라는 특수 환경의 신뢰와 기강, 그리고 한 인간의 존엄성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가장 엄중한 책임을 묻는 법 조항이 바로 군형법 제92조의8(강간 등 살인·치사)입니다. 이 글에서는 군형법의 가장 무거운 조항 중 하나인 제92조의8을 개념부터 실무적 쟁점까지 심도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군형법 제92조의8의 의의와 적용 대상
군형법 제92조의8은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중 가장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경우를 다루는 조항입니다. 이 조항의 핵심은 성범죄와 살인·치사라는 두 개의 중대한 범죄가 결합되었을 때, 이를 가중하여 처벌함으로써 군 기강을 확립하고 군내 성범죄를 근절하며 피해자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군대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폐쇄적인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외부보다 은폐되거나 피해자가 구제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일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성범죄가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이는 군 조직 전체의 신뢰와 전투력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군형법은 일반 형법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여 이러한 범죄를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적용 대상은 누구인가?
군형법 제92조의8의 적용을 받는 주체와 범죄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객체) 모두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군인 등’에 해당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적용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군인: 현역에 복무하는 장교, 준사관, 부사관 및 병(兵)
- 군무원: 군부대에 근무하는 공무원
- 군적(軍籍)을 가진 군(軍)의 학교의 학생·생도와 사관후보생·부사관후보생
- 소집되어 복무하고 있는 예비역·보충역 및 전시근로역인 군인
2. 구성요건 심층 분석: 범죄 성립의 핵심 조건
군형법 제92조의8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법률적 요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이를 ‘구성요건’이라고 하며, 주체, 객체, 행위, 결과, 그리고 이들 사이의 인과관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요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해당 범죄로 처벌할 수 없으므로, 매우 엄격하게 판단됩니다. 각 구성요건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성요건 | 상세 설명 | 핵심 포인트 |
|---|---|---|
| 주체 (Subject) |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군인, 군무원 등 | 범행 당시 ‘군인 등’의 신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 객체 (Object) |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 | 피해자는 법조문에서 명시한 특정 신분에 해당해야 합니다. |
| 기본범죄 (Act) | 군형법 제92조(강간), 제92조의2(유사강간), 제92조의3(강제추행), 제92조의4(준강간, 준강제추행), 제92조의5(미수범)의 죄를 범한 경우 | 단순 폭행이나 협박이 아닌, 명시된 성범죄 중 하나를 저질러야 합니다. |
| 중한 결과 (Result) | 피해자를 살해하거나(살인), 사망에 이르게 한 때(치사) |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해야 합니다. |
| 인과관계 (Causation) | 기본범죄인 성범죄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결과 사이에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 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 성범죄 행위가 없었다면 사망 결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입증되어야 합니다. |
⚠️ ‘살인’과 ‘치사’의 결정적 차이
‘살인’과 ‘치사’는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행위자의 ‘고의’ 유무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살인’은 성범죄를 저지른 후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살해하는 경우입니다. 반면 ‘치사’는 살해할 의도는 없었으나, 성범죄 과정에서의 폭행 등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피해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를 의미합니다. 이 둘은 법정형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3. 일반 형법 제301조의2와의 비교
민간인에게 적용되는 일반 형법에도 군형법 제92조의8과 유사한 조항이 존재합니다. 바로 형법 제301조의2(강간 등 살인·치사)입니다. 두 조항은 성범죄와 사망 결과의 결합을 가중처벌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유사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과 군형법만의 특수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입법 목적과 보호법익에서 비롯됩니다. 일반 형법은 개인의 생명과 신체,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된 보호법익으로 삼습니다. 반면, 군형법은 이러한 개인적 법익 보호에 더하여 ‘군 기강 확립’이라는 국가적 법익을 함께 보호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합니다. 이러한 목적의 차이가 법정형이나 적용 범위에 미묘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구분 | 군형법 제92조의8 (강간 등 살인·치사) | 일반 형법 제301조의2 (강간 등 살인·치사) |
|---|---|---|
| 적용 대상 (주체) | 군인, 군무원 등 군형법 적용 대상자 | 누구나 |
| 피해자 (객체) | 군인, 군무원 등 군형법 적용 대상자 | 누구나 |
| 기본범죄의 범위 | 군형법상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 (제92조~제92조의5) | 형법상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8조 등) |
| 법정형 (살인) | 사형 또는 무기징역 | 사형 또는 무기징역 |
| 법정형 (치사) |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
| 주요 보호법익 | 개인적 법익 + 국가적 법익 (군 기강) | 개인적 법익 (생명, 신체, 성적 자기결정권) |
4. 처벌 수위와 양형 기준: 실무상 고려사항
군형법 제92조의8은 군형법상 가장 무거운 처벌을 규정한 조항 중 하나입니다. 법에 명시된 처벌 수위, 즉 법정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자를 살해한 때: 사형 또는 무기징역
-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때: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 주요 양형 고려 요소
재판부는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피해자와의 관계, 피해 회복 노력, 군 기강에 미친 영향 등을 면밀히 검토합니다. 특히 상관이 부하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 계획적인 범행, 범행 은폐 시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은 매우 불리한 양형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진지한 반성, 피해자 또는 유족과의 합의 등은 유리한 요소로 고려될 수 있으나, 범죄의 중대성 때문에 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5. 관련 판례 동향 및 제도적 변화
군형법 제92조의8과 관련된 사건은 그 중대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판례의 축적과 법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왔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군내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제도에 중요한 변화들이 있었습니다.재판 관할의 변화: 군사법원에서 민간법원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재판 관할의 이전입니다. 과거에는 군형법이 적용되는 모든 범죄는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군내 성범죄 사건 처리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이는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개정된 군사법원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군인 등이 저지른 성폭력범죄는 원칙적으로 민간법원에서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군형법」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이 범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의 성폭력범죄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성범죄는 민간법원의 재판권에 속합니다. 또한 군형법 제92조의8과 같이 군인 등이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범죄 역시 민간법원이 재판권을 가집니다. 다만,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에는 예외적으로 군사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국방부장관이 국가안전보장, 군사기밀보호 등의 사유로 군사법원 기소를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이 경우 검찰총장 및 고소권자는 대법원에 취소 신청 가능). 이는 군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보다 독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됩니다.📜 용어의 변화와 인권 감수성
과거 군형법을 포함한 성범죄 관련 법률에서는 피해자를 ‘부녀(婦女)’로 한정하는 등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법 개정을 통해 이러한 용어들이 ‘사람’으로 변경되면서,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성범죄의 피해자로 인정하고 보호하려는 현대적 법 감정과 인권 감수성을 반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법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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