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SE FILE : 성범죄 분야 리딩케이스 해설 (수행사례 아님)
대법원 2004. 4. 16. 선고 2004도52 판결 [업무상위력등에의한추행]
⚖️ 의미: ‘어깨’라는 신체 부위 자체가 아니라, 접촉의 맥락과 경위로 추행을 판단해야 한다고 선언한 판결
“어깨를 주물렀을 뿐인데 추행이라고요?” 직장에서 이런 일을 겪거나, 이런 말을 들어본 분이 계실 것입니다. 성적 부위가 아닌 곳을 만졌으니 성추행이 아니라는 생각은, 한때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04도52 판결이 그 상식을 뒤집었습니다. 이 판결은 어깨든 허벅지든, 추행 판단에서 신체 부위보다 접촉의 맥락과 경위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리딩케이스입니다. 이번 판례평석에서는 이 판결이 어떤 사건에서 나왔고, 왜 중요한지를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어깨 접촉과 성추행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깨동무 성추행 해설도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사건의 재구성: 거절할 수 없는 요구
ℹ️ 아래 사실관계는 공개된 대법원 판결문에 기재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본 사건은 저희 법무법인이 수행한 사건이 아니며, 성범죄 분야의 중요 판결(리딩케이스)을 독자분들께 해설해 드리기 위해 선정한 판결입니다. 참고로 저희 법무법인의 종결사례 해설에서는 의뢰인 보호를 위해 사실관계를 이처럼 상세히 공개하지 않습니다.
2002년 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한 중견기업 서울지사. 40평 남짓한 사무실을 계열사와 공유하며, 두 회사 직원을 합쳐도 10여 명에 불과한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기혼 남성인 피고인 A씨는 영업부 소속 직원이었습니다. 직급만 보면 중간 관리자에 불과했지만, A씨에게는 남다른 배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회사 회장과 대표이사의 조카였습니다. 이 사실은 사내에서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고, A씨의 직장 상사들조차 그의 행동을 쉽게 제지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인 피해자 B씨는 서울지사의 유일한 여직원이었습니다. A씨는 평소 B씨에게 자신의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반복적으로 요구하였고, B씨는 거절하지 못한 채 여러 차례 어쩔 수 없이 이에 응하였습니다. B씨는 이에 대해 “평소 수치스럽게 생각해 왔다”고 진술하였습니다.
2002년 4월 중순 어느 날, A씨는 또다시 B씨에게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B씨는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A씨는 곧바로 B씨의 등 뒤로 다가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양손으로 B씨의 어깨를 주물렀습니다. B씨는 당시 “온몸에 소름이 돋고 피고인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이후 A씨는 같은 해 4월경과 5월경, 두 차례에 걸쳐 B씨를 갑자기 껴안았습니다. 이후 B씨에게 상해까지 가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를 계기로 B씨는 그동안 겪었던 일련의 행위들을 문제 삼게 되었습니다.
⚠️ 사건의 핵심 포인트
피고인은 회장·대표이사의 조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상사들조차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피해자는 사무실 유일한 여직원으로, 반복된 어깨 주무르기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어깨를 주무른 것’이 법적으로 추행에 해당하는가였습니다.
2. 법원의 엇갈린 판단: 무죄와 유죄 사이
A씨는 당시 시행되던 구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제11조 제1항(업무상위력등에의한추행)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2002년 발생 사안이어서 당시 법률이 적용되었으며, 현재의 법 체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현행법에서 대응되는 조문의 구성요건과 법정형은 성폭력처벌법 제10조(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해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가. 1심: 유죄 — “추행에 해당한다”
1심 법원은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어깨를 주무른 행위와 이후 이어진 행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나. 2심(항소심): 일부 무죄 — “어깨는 추행이 아니다”
그러나 서울지방법원 항소부(2003노8108)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2심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어깨를 주무른 행위에 대해 “추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이 부분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2심 법원이 주목한 사정들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피고인이 이전에도 피해자에게 어깨를 주물러 달라고 한 적이 있고 피해자가 이에 응해 준 적도 있는 점, 피해자가 당시 적극적으로 반항하지는 않은 점, 어깨를 주무른 장소가 공개된 사무실인 점 등을 들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법적으로 추행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이 판결의 이면에는, 당시 실무에서 통용되던 하나의 관행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추행 여부를 판단할 때 ‘접촉된 신체 부위’가 사실상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동했던 것입니다. 가슴, 엉덩이 등 이른바 ‘성적 부위’에 대한 접촉만이 추행으로 인정되고, 어깨, 등, 허리 같은 부위에 대한 접촉은 쉽게 추행에서 배제되곤 했습니다.
다. 대법원: 파기환송 — “신체 부위로 추행을 나누지 마라”
검사가 상고하였고, 대법원은 원심의 무죄 부분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추행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 판결요지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
여성에 대한 추행에 있어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3. 핵심 법리: ‘어디를’이 아니라 ‘어떻게’가 기준이다
이 판결의 핵심은 단 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추행에 있어 신체 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한마디가 종래 실무의 관행을 정면으로 뒤집었습니다.
가. 종래의 실무 관행
이 판결 이전에도 대법원은 추행을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추행의 기본 구성요건과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형법 제298조(강제추행) 해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피해자의 의사, 관계, 경위, 행위태양,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도 이미 확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이러한 종합적 판단 기준에도 불구하고, 접촉된 ‘신체 부위’가 사실상 핵심 판단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졌으면 추행, 어깨나 등을 만졌으면 추행이 아니라는 이분법이 암묵적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2심 무죄 판결이 바로 그러한 관행의 산물이었습니다.
나. 대법원이 제시한 새로운 판단 틀
대법원은 접촉된 부위가 어깨라는 이유만으로 추행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추행이란 행위의 외형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이루어진 전체 맥락 속에서 성적 자유를 침해하였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판결은 ‘업무상 위력’의 인정 기준을 정면으로 설시한 것이라기보다, 원심이 추행 자체를 부정한 점을 법리 오해로 파기한 판결이라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 추행 판단의 종합적 고려 요소
대법원이 제시한 7가지 고려 요소: ① 피해자의 의사 ② 성별·연령 ③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④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⑤ 구체적 행위태양 ⑥ 주위의 객관적 상황 ⑦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 이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요소들이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종합적으로’ 고려된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요소만으로는 추행을 인정하기 어렵더라도, 여러 요소가 결합되면 추행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주목한 것은 다음과 같은 구체적 맥락이었습니다.
- 피고인은 회사 경영진의 조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상사들조차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피해자는 사무실의 유일한 여직원으로, 직장 상사인 피고인의 반복적인 어깨 주무르기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응해야 했습니다.
- 피해자가 거절하자 피고인이 직접 피해자의 어깨를 주물렀고, 피해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 이후 두 차례 껴안는 행위까지 이어져, 일련의 행위로서의 맥락이 형성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어깨를 주무른 행위만 떼어 보기보다, 그 전의 반복된 요구와 이후의 껴안기까지 이어진 전체 흐름을 함께 보았을 때,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한 것이며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4. 실무적 의미: 직장 내 성추행 판단이 달라지다
가. 수사·재판 실무의 변화
이 판결 이후, ‘비성적 부위’ 접촉에 대한 추행 인정의 문이 열렸습니다. 수사 단계에서 “어깨를 만졌을 뿐”이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하던 관행에 변화가 생겼고, 재판에서도 접촉 부위보다 맥락, 관계, 피해자의 반응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판결은 추행 판단의 일반 법리로서 넓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나. 성범죄 변호 실무의 변화
피해자 측에서는, 비성적 부위 접촉이라도 반복성, 거절 후의 재접촉, 권력관계, 피해자의 구체적 반응(혐오감, 수치심) 등을 세밀하게 입증하면 추행이 인정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특히 피해 진술에서 느낌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혐오감을 느꼈다”는 진술이 대법원 판단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피의자·피고인 측에서는, 단순히 접촉 부위가 비성적이라는 항변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행위의 맥락, 당사자 관계의 성격, 접촉의 경위와 방식, 피해자의 사전·사후 반응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방어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업무상위력추행과 강제추행의 구성요건 차이에 대해서는 업무상위력추행 vs 강제추행 비교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대응
이 판결은 형사법의 영역을 넘어 기업의 인사·교육 실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판결의 취지는 이후 직장 내 성희롱 판단 실무와 예방교육에서 어깨·등 등 비성적 부위 접촉을 문제 삼는 방향과 맞닿아 있습니다. 기업의 성희롱 예방교육에서도 어깨를 주무르는 행위가 성추행에 해당할 수 있음을 교육하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 구분 | 판결 이전 | 판결 이후 |
|---|---|---|
| 판단 초점 | ‘어디를’ 만졌는가 (신체 부위) | ‘어떻게’ 만졌는가 (맥락·관계·경위) |
| 비성적 부위 접촉 | 추행 인정에 소극적 | 맥락에 따라 추행 인정 가능 |
| 피고인 측 항변 | “어깨(등, 허리)일 뿐”으로 방어 가능 | 접촉 부위만으로는 방어 효과 제한적 |
| 기업 교육 | 성적 부위 접촉 위주 교육 | 어깨·등 접촉도 성추행 유형으로 포함 |
참고로 업무상위력추행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형사처벌 외에도 신상정보등록, 취업제한 등 부수적 처분이 함께 부과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5. 이 판결이 남긴 것: 추행 범위 확대 3부작의 시작
2004도52 판결은 독립된 하나의 판결로서도 중요하지만, 이후 대법원이 추행의 성립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 온 흐름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대법원은 세 개의 판결을 통해, 추행 성립을 제한하던 세 가지 벽을 차례로 허물었습니다.
📜 추행 범위 확대 3부작
① 2004도52 (본 판결) — 신체 부위에 따른 차이를 부정
: “어깨도 추행이 될 수 있다”
② 2015도9517 — 성적 목적·동기를 필수 요건에서 제외
: “화풀이로 한 행위도 추행이 될 수 있다”
③ 2018도13877 관련 전원합의체 — 폭행의 정도 기준을 완화
: “기습적 접촉도 강제추행이 될 수 있다”
각각의 판결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면서도, 세 판결이 함께 그리는 큰 그림은 하나입니다. 추행 성립의 문턱을 낮추어,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더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입니다.
이 세 판결을 관통하는 하나의 방향이 있습니다. 추행의 판단 기준을 ‘행위자 중심’에서 ‘피해자 중심’으로, ‘부분적 요소’에서 ‘종합적 맥락’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2004도52 판결은 바로 그 전환의 첫 번째 돌을 놓은 판결이었습니다.
남아 있는 논점
다만 이 판결이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닙니다. ‘신체 부위에 따른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법리가 ‘비성적 부위 접촉이면 곧바로 추행’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관계·경위·반복성·거절 여부·피해 반응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악수나 팔을 가볍게 두드리는 행위까지 추행에 해당하는지는 여전히 개별 사안에서의 구체적 판단에 맡겨져 있습니다.
또한 대법원은 어깨 주무르기와 이후 껴안기를 “일련의 행위”로 묶어 판단하였는데, 어깨 주무르기 단독으로도 추행이 성립하는지에 관해서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판결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대법원은 어깨 주무르기 그 자체의 추행성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6. 이승혜 변호사의 판례 총평
대법원 2004도52 판결은 “어깨를 만졌을 뿐인데 성추행이냐”라는 물음에 대해, 대법원이 신체 부위 중심의 판단 관행을 명시적으로 부정한 대표적 판결입니다. 추행인지 아닌지는 접촉한 신체 부위가 아니라, 그 접촉이 이루어진 맥락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의 어깨를 주무르는 일은, 겉보기에는 사소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절할 수 없는 관계, 반복되는 요구, 거절 후의 직접적 접촉, 그리고 그로 인한 혐오감이라는 맥락이 더해지면, 그 ‘사소한 접촉’은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가 됩니다.
이 판결은 또한 이후 2015도9517 판결(성적 목적 불요), 2018도13877 관련 전원합의체 판결(기습추행 인정)로 이어지는 추행 범위 확대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20년 전 어깨 하나를 두고 시작된 법리 논쟁이, 오늘날 성범죄 판단의 기본 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특히 이 판결이 파기환송한 원심 무죄 판결의 논리, 즉 “어깨는 성적 부위가 아니므로 추행이 아니다”라는 논리가 지금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20여 년 사이에 우리 사회와 법원의 인식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의 시작이 바로 이 판결이었습니다.
만약 직장 내에서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당하고 계시다면, ‘비성적 부위 접촉이니까 괜찮겠지’라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축소해서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접촉의 부위가 아니라 그 접촉이 일어난 상황과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판결의 메시지입니다. 반대로 업무상위력추행 혐의를 받고 계시다면, 단순히 “어깨만 만졌다”는 주장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행위의 맥락, 당사자 관계, 피해자의 반응까지 고려한 종합적 방어 전략이 필요합니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의 구체적 대처법은 강제추행 초기대응 가이드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