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신체 접촉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가 발생한 맥락과 당사자 간의 관계에 따라 법적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법은 행위 그 자체만큼이나 “어떤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했는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특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성범죄 영역에서는 이러한 맥락적 요소가 범죄 성립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유사해 보이지만 법리적으로는 명확히 구분되는 업무상위력추행과 강제추행의 구성요건을 비교 분석하여, 두 범죄의 본질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범죄 전반의 법률 체계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아래 글들을 함께 참고하시면 좋습니다.1. 강제추행의 핵심,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
강제추행죄는 형법 제298조에 규정된 범죄로, 그 성립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사람을 추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폭행 또는 협박은 반드시 상대방의 저항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힘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신체에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일반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행위를 폭행·협박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시해 왔습니다. 즉, 상대방의 반항을 어렵게 만들 정도의 유형력 행사라면 폭행으로 인정될 수 있고, 그 강도는 사안별로 구체적으로 판단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행위들이 대표적입니다.- 상대방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끄는 행위
- 갑자기 껴안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행위
판례가 말하는 ‘폭행·협박’의 정도
강제추행죄에서의 폭행·협박은, 강간죄처럼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는 것(폭행), 일반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는 것(협박)이면 구성요건상 폭행·협박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 상대방의 상황, 행위자의 발언·행동을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2. 업무상 위력 등 추행의 핵심, ‘위력’의 범위
업무상 위력 등 추행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죄의 핵심 구성요건은 “위력”입니다. 법은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위력”이란 단순한 물리력뿐 아니라, 상대방의 자유 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사회적·경제적·조직적 세력 전반을 의미하며, 유형·무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직장 상사가 인사고과, 승진, 업무 배정에서의 불이익을 암시하며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하는 경우
- 교수가 학점·졸업·추천서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를 이용해 추행하는 경우
- 지도목사·종교지도자, 상담사·치료자 등이 정신적·종교적 영향력을 이용해 성적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
‘위력’ 판단 시 고려 요소
법원은 위력 여부를 판단할 때 다음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행위자의 지위·권한 범위, 상대방과의 종속 관계 여부(인사권, 평가권, 계약갱신 권한 등), 평소 업무 분위기와 조직문화, 거부 시 예상되는 불이익(해고·전보·평판 등),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할 수 있었는지 등입니다.
3. 두 범죄의 결정적 차이: 행위 수단과 관계의 특수성
두 범죄는 모두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라는 공통된 보호법익을 가지지만, 구성요건을 세부적으로 보면 다음 두 가지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가. 행위 수단의 차이
- 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직접적인 강제력이 요구됩니다.
- 물리력(유형력) 행사
- 공포심을 일으키는 해악의 고지
- 업무상위력추행: “위력 또는 위계”라는 무형의 지배력이 핵심입니다.
- 지위·권한·평판 등으로 인해 상대방의 자유의사가 제압된 상태
- ‘거절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사실상 강제력으로 작용하는 구조
나. 관계의 특수성
- 강제추행은 특별한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으므로, 누구에게나 성립할 수 있는 일반적 범죄입니다.
- 업무상위력추행은 “업무·고용 등으로 보호·감독을 받는 관계”와 “그 관계에서 비롯되는 힘의 불균형”이라는 특수한 관계가 전제되어야만 성립합니다.
| 구분 | 강제추행 (형법 제298조) | 업무상 위력 등 추행 (성폭력처벌법 제10조) |
|---|---|---|
| 행위 주체 | 제한 없음 (누구나) | 업무, 고용 등 관계로 보호·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자 |
| 행위 객체 | 사람 (성별, 나이 무관) |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 |
| 핵심 행위 수단 | 폭행 또는 협박 (유형력, 해악 고지) | 위력 또는 위계 (무형의 권세, 사회·경제적 지위) |
| 관계의 특수성 | 요구되지 않음 (일반적 관계) | 필수적 요건 (보호·감독 관계) |
| 폭행 필요 여부 | 기습적 행위만으로 폭행 인정 가능 | 물리력 불필요, 무형적 영향력 중심 |
| 보호법익 |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 |
4. 구성요건 입증의 난이도와 주요 쟁점 비교
형사사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요건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입니다. 두 범죄는 요구되는 구성요건이 다른 만큼, 실제 쟁점과 입증 난이도도 달라집니다.가. 강제추행 – “사건 당시의 물리적 상황”이 핵심
강제추행 사건에서는 주로 다음과 같은 부분이 쟁점이 됩니다.- 폭행 또는 협박이 실제 있었는지
- 그 폭행·협박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 기습추행에 해당하는지 여부
- 해당 행위가 “추행”에 이를 정도의 성적 접촉인지 여부
나. 업무상위력추행 – “관계의 역학과 위력 존재”가 핵심
업무상위력추행에서는 단순히 신체 접촉이 있었는지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음 요소들이 함께 입증되어야 합니다.- 행위자와 상대방 사이에 “업무·고용 등 보호·감독 관계”가 있었는지
- 행위자의 지위·권한이 실제로 상대방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였는지
- 그 관계에서 비롯된 위력이 추행 당시 어떻게 작용했는지
- 상대방이 왜 명시적으로 거절하지 못했는지, 현실적인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5. 법적 평가와 처벌 수위의 차이점 분석
법정형(징역·벌금의 범위)은 입법자가 각 범죄의 불법성·중요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
가. 입법 체계상의 위치
강제추행은 형법상의 기본 성추행죄이고, 업무상위력추행은 성폭력처벌법에 별도로 규정된 특별한 유형의 성추행입니다. 즉, 법정형 상한의 차이는 처벌의 경중을 단순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행위 유형을 구분하여 규율한 입법 구조 때문입니다.나. 보안처분 등 부수 효과
보안처분의 중요성
두 범죄 모두 유죄가 인정되면, 형량과 별개로 신상정보 등록, 정보 공개·고지, 특정 기관·업종 취업 제한 등의 보안처분이 함께 문제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징역 상한이 얼마냐”만으로 범죄의 중대성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