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완성’과 ‘범죄의 시도’는 법의 저울 위에서 어떻게 다르게 측정될까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행위자의 책임을 온전히 면제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법적, 철학적 질문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형법상 미수 개념입니다. 그 중 오늘 살펴볼 것은,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 등에 대해서 미수범을 처벌한다는 규정인 형법 제300조 ‘미수범’ 규정입니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성범죄 영역에서, 비록 최종적인 결과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한 법익 침해의 위험성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 이 글에서는 형법 제300조가 성범죄 사건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는지, 그 개념부터 실무적 쟁점까지 심도 있게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1. 형법 제300조(미수범)의 의의와 적용 범위
형법 제300조는 특정 범죄들의 미수범을 처벌하는 근거 규정입니다. 여기서 ‘미수범(未遂犯)’이란,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였으나 행위를 종료하지 못했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즉, 범죄를 의도하고 행동을 시작했지만, 어떠한 이유로든 최종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이 조항의 핵심적인 의의는 범죄가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그 행위가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법익)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점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결과 발생이라는 우연한 사정에 의해 처벌 여부가 결정되는 것을 방지하고, 사회의 안전과 개인의 법익을 두텁게 보호하려는 입법적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형법 제300조는 제297조(강간), 제297조의2(유사강간), 제298조(강제추행),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의 미수범을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범죄의 경우, 범행이 미수에 그쳤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 충격과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위험성이 기수범에 못지않게 중대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형법 제300조(미수범) 핵심 요약
형법 제300조는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 등 주요 성범죄에 대해, 범행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실행에 착수한 단계부터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법적 근거입니다. 이는 결과 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위험한 행위 자체를 제재하여 법익을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2. 성범죄 미수범의 3대 성립 요건
성범죄 미수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법리적으로 세 가지 핵심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이 요건들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특정 행위가 단순한 준비 단계를 넘어 처벌 가능한 미수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실행의 착수 (Commencement of Execution)
‘실행의 착수’란 범죄 구성요건을 실현하기 위한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을 포함하는 행위를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범죄를 저지를 마음만 먹거나 단순히 계획을 세우는 ‘예비’ 또는 ‘음모’ 단계와는 명확히 구분됩니다. 성범죄에서의 실행의 착수 시점은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으나, 대법원 판례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를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습니다.- 피해자를 제압하기 위한 폭행이나 협박을 개시한 시점
-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신체에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하는 시점
- 항거불능 상태를 유발하기 위한 약물 등을 사용하는 시점
예를 들어, 강간을 목적으로 피해자의 뒤를 따라가기만 한 것은 예비 단계에 해당할 수 있지만, 피해자의 입을 막고 힘으로 제압하려는 행위를 시작했다면 이는 ‘실행의 착수’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범죄 실행의 고의 (Intent)
미수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고의’, 즉 범죄를 완성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범죄의 경우, 강간, 강제추행 등의 구성요건적 결과를 발생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행위를 시작해야 합니다. 과실로 범죄의 실행에 착수한다는 것은 개념적으로 성립할 수 없으므로, 미수범은 오직 고의범에 대해서만 논의될 수 있습니다.결과의 불발생 (Non-occurrence of the Result)
미수범의 마지막 요건은 결과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강간죄를 예로 들면, 폭행·협박을 통해 간음을 시도했으나 피해자의 격렬한 저항, 제3자의 개입, 행위자 스스로의 심경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실제 간음 행위에 이르지 못한 경우를 말합니다. 만약 간음이라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는 미수범이 아닌 ‘기수범(旣遂犯)’이 됩니다.성립 요건 | 핵심 내용 | 성범죄 사례 (예시) |
---|---|---|
실행의 착수 | 범죄 실현에 직접적으로 위험한 행위를 개시 | 피해자의 저항을 억압할 목적으로 폭행을 시작함 |
범죄의 고의 | 범죄를 완성하려는 내심의 의사 | 강간의 의도를 가지고 피해자를 폭행함 |
결과 불발생 | 구성요건적 결과가 발생하지 않음 | 폭행은 했으나, 피해자의 저항으로 간음에는 이르지 못함 |
3. 미수범 처벌 규정과 감경 가능성
범죄가 미수에 그쳤다고 해서 처벌이 항상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법은 미수범의 처벌에 대해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미수에 이르게 된 경위에 따라 처벌 수위를 다르게 정하고 있습니다.형법 제25조(미수범) 제1항에 따르면,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합니다. 제25조 제2항은, 이때 형량은 기수범보다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임의적 감경). 이는 법관의 재량에 따라 감경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사안의 중대성, 범행 동기, 피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수범과 동일한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수범 중에서도 특별하게 다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법 제26조의 중지범, 즉 ‘중지미수‘ 와 제27조의 불능범, 즉 ‘불능미수‘ 입니다
⚠️ 장애미수 vs. 중지미수 vs. 불능미수: 처벌의 결정적 차이
형법 제25조 제2항 – 장애미수는 피해자의 저항이나 제3자의 발견 등 외부적인 장애 요인 때문에 범행을 완성하지 못한 경우로, 형을 ‘감경할 수 있다'(임의적 감경)고 규정합니다.
형법 제26조 – 중지미수는 범죄자가 자의적으로 범행을 중단하거나 결과 발생을 방지한 경우로,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한다'(필요적 감면)고 규정하여 반드시 형을 줄여주거나 면제해야 합니다. 이는 행위자의 자발적인 불법 실현 포기를 정책적으로 장려하기 위함입니다.
형법 제27조 – 불능미수는 실행 수단이나 대상의 성질상 결과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로, 위험성이 인정되면 처벌할 수 있고, 다만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임의적 감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중지미수가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만약 행위자가 피해자를 제압한 후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범행을 중단했다면 중지미수가 성립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예상보다 강한 저항에 놀라 그만두는 등 외부적 상황에 의해 포기한 경우는 장애미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4. 기수, 예비·음모, 불능미수와의 명확한 구분
미수범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인접한 다른 범죄 단계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수, 예비·음모, 불능미수와의 차이점을 아는 것은 법률 실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구분 | 개념 | 처벌 원칙 | 성범죄 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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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음모 | 범죄 실행을 위한 준비 행위 또는 계획 단계. 실행 착수 이전. | 처벌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처벌. (성범죄는 대부분 없음) | 강간을 위해 수면제를 구입하는 행위. |
미수 | 실행에 착수했으나 결과를 발생시키지 못한 단계. | 원칙적으로 처벌. 기수범에 준하되 감경 가능. (형법 제25조) | 피해자를 폭행했으나 저항으로 간음에 실패. (형법 제300조) |
불능미수 | 실행 수단이나 대상의 성질상 결과 발생이 불가능한 경우. | 위험성이 인정되면 처벌.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음. (형법 제27조) | 사람으로 오인하고 마네킹을 강간하려 한 경우. |
기수 | 범죄 구성요건이 모두 실현되어 범죄가 완성된 단계. | 법정형에 따라 처벌. | 폭행·협박을 통해 간음 행위가 이루어짐. |
5. 실무상 쟁점: 특별법 연계와 비친고죄의 중요성
형법 제300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현대 성범죄 법제의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바로 특별법과의 관계, 그리고 비친고죄 원칙입니다.특별법과의 연계
오늘날 성범죄는 형법뿐만 아니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이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등 다양한 특별법에 의해서도 규율됩니다. 이러한 특별법들은 특정 유형의 성범죄(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통신매체 이용 음란죄 등)를 규정하고 있으며, 이들 범죄에도 미수범 처벌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성폭력처벌법 제15조). 나아가 일부 죄명은 예비, 음모까지 처벌하고 있습니다(성폭력처벌법 제15조의2).예를 들어, 성폭력처벌법상 특수강간죄(흉기 휴대 또는 2인 이상 합동)의 경우, 그 미수범 역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형량도 매우 무겁습니다. 따라서 특정 성범죄 미수 사건을 다룰 때는 형법 제300조뿐만 아니라 해당 행위에 적용될 수 있는 특별법 규정까지 면밀히 검토해야 정확한 법적 판단이 가능합니다.
비친고죄의 중요성
과거 대부분의 성범죄는 ‘친고죄(親告罪)’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6월 19일 형법 개정으로 강간, 강제추행 등 대부분의 성범죄에서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고 ‘비친고죄(非親告罪)’로 전환되었습니다.💡 비친고죄 전환의 실무적 의미
성범죄가 비친고죄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거나, 고소를 했다가 나중에 취하하더라도 수사와 처벌이 계속 진행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미수범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따라서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절차가 중단되지 않으며, 국가가 범죄를 인지한 이상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처벌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형법 제300조는 성범죄가 미수에 그치더라도 그 행위의 위험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겠다는 우리 법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조항입니다. 성범죄 미수범의 성립 요건과 처벌 규정, 그리고 관련 법제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법률 전문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법적 소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출판될 예정인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의 저작물로서, 일체의 저작권 침해행위를 금지합니다. 인용시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 성범죄 법률/용어 해설집, url : https://성범죄로펌.com/~ , 날짜” 양식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 침해 사례를 copyright@lawlsh.com 으로 제보해 주시면, 소정의 사례금을 지급하오니, 많은 협조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