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골목길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잡지, 혹은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파격적인 누드 사진. 이 두 가지는 모두 물리적인 형태를 띤 시각적 표현물이지만, 어떤 것은 예술로, 다른 어떤 것은 법적 처벌의 대상인 ‘음화(淫畫)’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이처럼 오프라인상의 유형물을 규제하는 형법 제243조(음화반포등)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문은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성 윤리 사이의 오랜 논쟁을 담고 있으며, 온라인 범죄를 다루는 특별법들의 법리적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본 글에서는 형법 제243조의 개념부터 시작하여,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음란성’의 판단 기준,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 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실무적 관점까지 심도 있게 탐색해 보고자 합니다.
1. 제243조 조문 및 기본 개념
형법 제243조는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입니다. 이 조항은 ‘공연음란죄’와 함께 형법상 ‘풍속을 해하는 죄’의 장에 속하며, 사회의 건전한 성적 풍속 및 도덕 감정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흔히 ‘음화반포죄’라고 불리지만, 정확한 죄명은 ‘음화반포등죄’입니다.📖 형법 제243조 (음화반포등) 조문 원문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 판매 또는 임대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주요 용어 해설
- 음란한 물건: 사회 일반의 건전한 성도덕 관념에 반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하며,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 부위나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서, 도화(그림), 필름뿐만 아니라 조각, 사진 등 유형물 일체를 포함합니다.
- 반포(頒布):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무상으로 교부하는 행위입니다. 길거리에서 음란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행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 판매(販賣): 대가를 받고 소유권을 이전하는 행위입니다. 음란물을 돈을 받고 파는 모든 행위가 해당됩니다.
- 임대(賃貸): 대가를 받고 일정 기간 사용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과거 성인 비디오 대여점 등이 이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 공연히 전시(公然히 展示):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관람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음란한 사진이나 그림을 상점 쇼윈도에 걸어두는 행위 등이 포함됩니다.
결론적으로, 형법 제243조는 물리적 형태를 가진 음란물을 불특정 다수에게 확산시키는 행위를 막아 사회의 성 풍속을 보호하려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2. 음란성 판단 기준과 판례
형법 제243조의 적용에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 어려운 부분은 바로 ‘음란성’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외설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시대와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법원은 음란성 판단에 대해 매우 신중하고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음란성 판단 3가지 요건
주요 리딩케이스
- 대법원 1995. 6. 16. 선고 94도2413 판결 :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에 해당한다고 보아 1992년 12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것이 1995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된 사건입니다. 문학 작품의 음란성 여부가 사회적으로 큰 논쟁이 되었으며,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한계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촉발했습니다.
- 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6도3558 판결 : 인터넷을 통해 성인 동영상을 제공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음란성 판단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재확인했습니다. 표현물이 단순히 저속하다는 느낌을 주는 정도를 넘어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음란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판결은 이후 음란성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판례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음란성 판단 기준을 점차 신중하게 적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특히 예술성, 사상성, 학술적 가치가 인정될 경우, 다소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있더라도 음란성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구성요건과 처벌 효과
형법 제243조 음화반포등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법에서 정한 객관적, 주관적 구성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으며, 처벌할 수 없습니다.범죄 성립을 위한 구성요건
구분 | 내용 | 설명 |
---|---|---|
객관적 구성요건 | 행위의 주체 |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누구나 이 죄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
행위의 객체 |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 (유형물) | |
행위 | 반포, 판매, 임대,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하는 행위 | |
주관적 구성요건 | 고의 (故意) | 자신이 취급하는 물건이 ‘음란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반포·판매 등을 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음란성에 대한 인식’이라고 합니다. |
⚖️ 처벌 수위 및 법적 효과
- 법정형: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 미수범 처벌: 본 죄는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따라서 반포나 판매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경우에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 친고죄/반의사불벌죄 여부: 피해자의 고소나 의사와 관계없이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사회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로 보기 때문입니다.
실무적으로는 초범이고 유통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영리 목적으로 조직적, 반복적으로 음란물을 유통했다면 징역형이 선고될 수도 있습니다.
4. 관련 법률 및 유사 범죄와의 비교
성적인 표현물 유통과 관련된 범죄는 형법 제243조 외에도 여러 특별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을 통한 유포가 일반화되면서, 각 법률의 적용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구분 | 형법 제243조 (음화반포등) |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 성폭력처벌법 제14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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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대상 | 오프라인 유형물 (책, DVD 등) | 온라인 정보 (영상, 사진 파일 등) | 불법 촬영물 또는 복제물 (온/오프라인 모두) |
행위 내용 | 반포, 판매, 임대, 전시, 상영 | 정보통신망을 통한 유통, 전시, 상영 | 반포, 판매, 임대, 제공, 전시, 상영 |
객체의 성격 | 일반 음란물 | 일반 음란물 | 타인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 유발 촬영물 |
처벌 수위 |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 7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 (처벌이 훨씬 무거움) |
핵심 차이 | 물리적 매체 유통 | 사이버 공간에서의 유통 | 피해자의 동의 없는 ‘불법성’이 핵심 |
⚠️ 특히 주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만약 유포된 음란물에 아동 또는 청소년이 등장한다면, 이는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에 따라 매우 중하게 처벌됩니다. 영리 목적으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배포, 판매, 제공하는 행위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며, 이를 구입·소지 또는 시청하기만 해도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일반 음란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범죄로 다루어집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성 관련 영상물 유포 사건의 대부분은 정보통신망법이나 성폭력처벌법, 아청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형법 제243조는 주로 오프라인에서 영리 목적으로 음란물을 대량 유통하는 고전적인 형태의 범죄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추세입니다.
5. 실무 적용 사례 및 최근 동향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편화로 인해 형법 제243조가 적용되는 사례는 과거에 비해 크게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조항이 의미를 가지는 영역이 존재하며, 사회 변화에 따라 새로운 해석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1) 실무 적용 사례
- 성인용품점의 음란물 판매: 성인용품점에서 판매 허가를 받지 않은 음란 영상 DVD나 잡지 등을 판매하다 적발되는 경우, 형법 제243조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음란 전단지 배포: 유흥업소 홍보 등을 위해 노골적인 사진이 포함된 전단지를 길거리나 차량에 무차별적으로 배포하는 행위는 ‘반포’에 해당하여 처벌될 수 있습니다.
- 논란이 되는 예술 전시: 과도하게 성적인 표현을 담은 예술 작품을 연령 제한 등의 조치 없이 공공연하게 전시하여 사회적 논란이 될 경우, 수사기관이 음화반포등죄 적용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예술성이 인정되면 무죄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최근 동향 및 전망
최근에는 ‘리얼돌’과 같은 성인용 인형이나 ‘AI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허위 영상물 등이 새로운 법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리얼돌 자체는 ‘음란물’로 보기 어렵다는 판례가 있으나, 특정 인물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물은 명예훼손이나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 편집·반포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국가가 성인의 사적인 성적 표현물 접근을 과도하게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음란성’의 기준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변화하고 재정립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디지털 시대 속 형법 제243조의 의의
형법 제243조는 비록 적용 사례가 줄어들고 있지만, 온라인 성범죄를 규율하는 여러 특별법의 법리적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음란성’에 대한 수십 년간의 판례 축적은 온라인 콘텐츠의 유해성을 판단하는 데에도 중요한 참고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이 조항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법을 아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표현물 규제에 대한 법적, 사회적 논의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출판될 예정인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의 저작물로서, 일체의 저작권 침해행위를 금지합니다. 인용시 “법무법인 이승혜앤파트너스, 성범죄 법률/용어 해설집, url : https://성범죄로펌.com/~ , 날짜” 양식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저작권 침해 사례를 copyright@lawlsh.com 으로 제보해 주시면, 소정의 사례금을 지급하오니, 많은 협조 당부드립니다. 감사합니다.